| | | ↑↑ 경주대에서 열린 터키 시네마의 역사 영화제 | ⓒ CBN 뉴스 | | [CBN뉴스 이재영 기자]= 9월 17일 경주대학교 공학관 강당에서 열린 ‘터키 시네마 역사-터키 영화의 어제와 오늘’은 ‘세월은 가도 기록은 남는 것’이라는 말을 되새겨 주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스탄불 in 경주 2014’ 일환으로 열린 이번 터키 다큐멘터리 상영과 특강에 대구경북 지역 대학생들과 영화 관계자들 350여명이 참석해 터키 영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상영한 ‘터키 영화의 어제와 오늘’ 다큐멘터리는 영화가 이스탄불에 처음 들어오게 된 이야기부터 발전 과정, 오늘날의 현주소까지 터키 영화의 역사를 시대별로 보여줬다.
이와 함께 ‘이스탄불 in 경주 2014’ 사무총장인 압둘라만 쉔 이스탄불시 문화사회실장이 행사 참석자들과 터키 영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했다.
100년의 역사,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편린들. 그 속에는 터키인들의 삶과 이야기 그리고 애환이 함께 했다.
| | | ↑↑ 터키 시네마의 역사 영화제에서 압둘라만 쉔 실장 특강 | ⓒ CBN 뉴스 | | 올해 터키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이스탄불 in 경주 2014’의 한 페이지로 기억될 이날의 행사는 특강에 나선 압둘라만 쉔 이스탄불시 문화사회실장의 “터키 영화는 불가능에서 가능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라는 말에서 그들의 영화 역사가 순탄했던 것만이 아님을 미루어 짐작하게 했다.
터키 영화는 1896년 한 호프집에서의 상영으로 길을 열었다. 이후 첫 영화는 1914년 푸앗 우즈크나이가 이스탄불에 있는 성 스테파노스 러시아 기념비가 무너지는 것을 카메라에 담은 것.
터키는 재현과 이미지 숭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국가. 이에 따라 시각이미지에 기반 한 예술인 영화가 자리 잡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영화는 ‘국민의 욕구를 반영한다’는 쉔 실장의 말처럼 터키의 사회상을 반영하면서 이어져 왔다.
특히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나 온 감독은 다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는 쉔 실장의 말이 그 시대 아픔을 대변한다. 마치 한국 영화가 검열과 삭제를 겪던 시기처럼.
터키 영화는 설립시대를 거쳐 연극인 시대에 들어오면서 서사영화가 만들어 지고 1921년에는 첫 코미디 영화도 만들어 진다. 1922년 첫 스튜디오가 생기고, 1924년 공화국 체재가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어렵게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자각이 싹텄다. 그리고 1934년에는 제2회 베니스영화제를 통해 국제대회에서 첫 상을 받는다.
시련이 왔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극도로 침체된 영화계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얼음 속에서도 생명이 꿈틀대는 것처럼 두 개의 영화사를 통해 제작은 계속되며, 영화인 시대를 맞아 연극에서 분리된 영화계는 프로페셔널 감독시대를 연다. 이어서 다가 온 황금시대. 1964년 터키 영화산업계 거장 메틴 에륵산이 ‘메마른 여름’으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절정의 시대를 열 기반을 만든다.
터키 영화계는 전반기인 1967년 이후에는 연간 200편, 1975년 이후엔 300편이 제작되고, 스타와 관객도 최고의 절정에 이른다. 1975년 컬러시대를 연 터키 영화는 당시 미국, 인도, 홍콩에 이어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드는 국가에 오르기도 했다.
1980년대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영화들이 많이 제작된다. 1982년 일마즈 귀니의 ‘욜’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부터 터키 영화는 다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1990년대. 제작 편수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대신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줄을 이으면서 독립영화시대를 열게 된다. 특히 누리 빌게 제이란은 2011년 ‘아나톨루에서의 한 때’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2014년 ‘겨울잠’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국내외 최다 영화제 수상 감독으로 등극한다.
세월과 함께 한 터키 영화는 ‘마법의 스크린’이 영원하기를 기대하는 그들의 바람처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압둘라만 쉔 이스탄불시 문화사회실장은 “역사의 강을 거슬러 올라 간 터키 영화의 역사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 기쁘다”면서 “2년 뒤 이런 기회가 한국에서 또 마련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 때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로 이 모든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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